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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 고골 『빼쩨르부르그 이야기』로부터 본문
옛 블로그 끌어오기 1탄 책 리뷰 이야기(2)
2018년말 작성.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니콜라이 고골 『빼쩨르부르그 이야기』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도스토예프스끼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문학의 나라다. 푸시킨부터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끼, 투르게네프와 체호프까지.
고골의 작품뿐 아니라,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특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광기와 욕망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에 등장하는 관리가 대표하는 희극성과 집착 역시 고골의 소설 속에 그대로 등장한다. 반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등 톨스토이 소설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시선은 이에 반하여 성실성과 사랑을 강조하고는 한다. 고골 역시 이를 지녔고, 그 사실들은 독특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러시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층적인 심리 상태와 생활 환경은 쉬이 이해할 수 없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인간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잘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온 글들을 읽어가는 걸까.
이 소설들이 가진 의미들을 생각한다. 고골의 「빼쩨르부르그 이야기」에 수록된 다섯 편의 소설, ‘코’, ‘외투’,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를 ‘코’를 중심으로 차례차례 들여다보며 여러 의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소설 속에 나타난 러시아 사회의 생활상과 배경, 인물들의 욕망과 꿈과 본성. 「빼쩨르부르그 이야기」에 관해 이야기해보겠다.
1) 코
‘코’는 소설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소설이다. 더불어 가장 유명한 글들 가운데 하나다. 고골의 소설이 지니는 이야기성과 풍자성, 환상성,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인식과 여러 가지 특질을 보여주는 고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다섯 편의 소설 중 코를 고골 소설을 읽어나가는 중요 단서로 다뤄보고자 한다.
이야기의 서두는 이렇다.
흔히 볼 수 없는 괴상한 사건이 3월 25일 빼쩨르부르그에서 발생했다. 8p
작가는 시작부터 사건이 흘러갈 방향에 대해서 말하며 독자들의 이해 방향을 조정한다. 서술자의 역할을 작가 본인이 직접 취하고 있으며, 그는 굉장히 광범위한 방면에서 소설에 직접 개입한다. 사건의 방향, 인물의 생각, 작가 본인의 생각이 자유롭게 등장하여 글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진 입장으로 지켜본다.
이 소설 속의 사건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1. 이발사의 빵에서 8등관 꼬발료프의 코가 나온다. 이발사는 한눈에 이 코의 주인을 알아본다. 그 과정에서 이발사는 겁을 집어먹는다.
그의 공포는 코 자체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실수에 관한 죄의식이다. 그가 실수를 단정하는 이유는 그가 술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술은 러시아 소설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 특별한 제재로써 그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들의 정신적인 어지러움과 환상, 욕망의 뒤틀린 발현 등에 대해 술은 중요한 단서 중 하나일 것이다. 작가는 이에 관해 이렇게 서술한다.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러시아의 솜씨 좋은 이발사가 모두 그렇듯이 대단한 술꾼이었다. 15p
고골은 다른 작품에서도 러시아의, 러시아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러시아의 특성은' 류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러한 시도는 한 민족을 같은 둘레 안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단일국가 사상이 지배적인 만큼 익숙한 태도지만, 다른 나라들은 이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러시아처럼 광활한 대지와 다양한 민족을 보유한 나라는 이와 조금은 먼 태도를 보이고는 한다. 그럼에도 고골이 이러한 서술을 즐겨 사용한 것은 어쩌면 빼제르부르그라는 도시의 특성과 시대 흐름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빼쩨르부르그는 유럽과 가까운 위치를 지니고 있다.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정책 방향으로 인해 세워진 도시이며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지나친 유럽화는 동시에 반발도 일으킨다. 19세기에 들어서, 특히 예술 분야에 있어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음악의 국민음악파, 미술의 풍속화로 대표되는 비판적 리얼리즘은 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푸시킨과 레르폰토프로부터 생겨난 러시아의 문학적 기질을 이어받은 20세기 초의 작가 고골 역시 같은 방식으로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형성하는데 이바지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2. 이발사는 코를 버리려고 시도한다. 경찰관이 이를 보고 제재를 가하며 이야기는 넘어간다. 여기서 작가는 아주 특수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여기서 사건은 완전히 안개 속에 묻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15p
이러한 서술 방식은 현대 문학에서는 즐겨 쓰지 않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와 개연성에 관해 무책임한 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식의 서술이 또다시 등장한다.
뒤이어… 그러나 여기서 이 사건은 또다시 미궁에 빠져버렸다. 그 후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47p
이 서술 방식은 그 효용가치로만 보자면, 소설 내에서 하나의 장을 넘기는 기능으로 쓰인다. 하지만 궁극적인 의도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드러난다.
드물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51p
이 말을 끝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작가는 끊임없이 개입하고 알 수 없다, 고 말함으로써 오히려 소설의 현실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설 속 환상은 리얼리즘 소설보다 더 현실에 가까이 있을 때 그 의미를 발현한다. 현실에 빗대어 보여주고자 한 그의 의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설의 허구성을 더 강하게 강조한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뒷일을 상상하며 내 삶에 스며드는 어떤 공포를 마주한다.
3. 꼬발료프는 코가 없어진 것을 알아챈다. 그는 거리로 나가 자신의 코가 5등관의 차림을 하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성당까지 코를 따라가 대화를 시도하지만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코는 사라진다. 여기서 인물은 '코'의 관등에 위압 당하여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관등제는 20세기 러시아 소설의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하며 인물들은 대부분 이 계급의 둘레에 얽매여 살아간다. 관등제에 대한 이해가 무척 부족했던 나는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 계급에 빗대어 이해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어떤 구조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러시아의 그것은 우리나라의 신분제도와는 또 다른 제도다. 인물들이 관등에 대하여 거의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색다르다. 체호프의 소설 「관리의 죽음」이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며, 이어지는 소설 ‘외투’ 속 아까끼의 죽음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들은 자기 윗사람의 호통과 관심을 끔찍할 정도로 중시한다. (물론 고골의 작품에서는 이에 대한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고 한다) 이는 이들의 사회관과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황제 짜르가 지니는 제정일치의 영향력 내에서 이들은 반항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억압과 억눌림 역시 뒤틀린 욕망의 단서들 가운데 하나로 두자.)
+ 고골 작품의 인물들은 고위 관리와 하부 노예들 사이 평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신분 상승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욕망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갈구하는 주체들로 고골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를 가장 잘 발현할 수 있는 계급이기도 했다. 관리 제도가 가진 여러 가지 악정을 풍자적으로 그려내었지만, 이들은 모두 수발을 드는 노예들을 두고 있었다. 아무리 힘이 없고 가난하게 그려지는 인물들도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을 곁에 두었다. 그들 역시 사회의 구성원이며 하나의 인격체였지만, 이 인물들에 관한 서술은 비중을 전혀 차지하지 않았다. (고골은 소설 속 수많은 인물의 성격과 사회 경험, 시선 등을 즐겨 묘사했음에도.) 이것은 시대와 소설이 지니는 일종의 한계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4. 꼬발료프 소령은 신문사로 찾아가 코를 수배하려 하지만 광고를 실을 수가 없다. 경찰서장을 찾아가지만 소령은 자존심 때문에 부탁에 실패한다.
경찰서장은 고골의 작품에 여러번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같은 인상을 지니고 있는데, 권위의식에 찌들어 있으며, 문제 해결보다는 본인들의 위신을 위해서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다. 경찰은 사회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는 직업적 특성이 있다. 이토록 부패하고 무능력하며 본질을 잃어버린 경찰들이 등장함으로 인해 작가는 무너진 사회 질서와 인간을 보호하는 사회 기능이 무너지고 만 현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욕망에 지나치게 약한 인물들로 나타나며 도덕이 부재한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우스운 점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욕망이 사회 구조와 강자의 욕망으로 무너졌을 때, 경찰서장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으며 때로는 더욱 크게 부풀려지고는 한다.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역할이 부재한 사회인 것이다. 나름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꼬발료프는 이에 반발하기도 하지만, 철저한 약자로 묘사되는 ‘외투’ 속 아까끼는 죽음으로 다가간다.
5. 꼬발료프는 집으로 돌아와 대령 부인 보드또치나가 딸의 결혼 문제로 앙심을 품어 마녀를 고용하여 자기 코를 떼어냈을 것이라 단정 지어 생각한다. 그러나 이발사를 방해했던 경찰이 코를 들고 찾아온다. 그는 국경을 넘으려던 코를 붙잡았다고 한다. 소령은 코를 붙이려 시도하지만 실패하여 의사를 부른다. 의사는 상황을 더욱 악화할 뿐이라며 붙일 수 없다고 한다. 좌절한 주인공은 보드또치나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고 그녀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건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해 이어지지만, 우리의 현실적인 이해 한도를 벗어난다. 대부분의 불가해한 상황은 인물이 독단적으로 결론 내리는 생각과 그 궤를 같이하여 벌어진다. 꼬발료프는 보드또치나 부인의 소행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것은 상황적 증거에 기반을 둔 것이며, 그가 그녀의 짓이 아닐 거라 여기는 것 역시 그의 개인적 판단에 근거한다. 이는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일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그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경찰서장의 예와 비슷하다. 의사 또한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다음은 의사의 대사이다.
“나는 돈 때문에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신념과 인술에 위배되는 것이니까요. 내가 왕진료를 받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거절함으로써 오히려 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 그렇게 상하지 않게 해놓으면 상당한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값을 비싸게 부르지만 않는다면 내가 팔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42p
의사와 경찰은 사회의 중요한 축이다.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이들이 움직이는 계기는 돈이다. 집에 찾아온 경찰은 코를 가져다주며 돈을 요구하고 소령은 그 대가를 낸다. 의사 역시 돈이 중요치 않다며 역설하지만 결국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 역시 돈이다. 사회는 인간보다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돈에 비해 얼마나 쉬이 버려지는가.
6. 빼쩨르부르그 전역에 움직이는 꼬발료프의 코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은 이를 구경다닌다.
이 역시 고골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테마 중 하나이다. 소문은 믿을 만한 것인가? 그러나 대중은 이 소문에 무엇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며 이것이 아주 중요한 화제가 된다. 대중은 허황된 이야기와 떠도는 소문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분명 소설 속에 묘사되는 러시아의 사회는 기형적인 모습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이 시기의 러시아의 특징일 뿐일까? 이건 기형적인가? 오.
7. 코가 다시 소령의 얼굴에 붙는다. 이후 코는 움직이지 않으며, 꼬발료프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코’는 어떠한 상징인가. 아주 간단히 겉으로 드러난 외모와 그에 결부되는 욕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얼굴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는 압도적인 것이다. 외모를 그 인물과 떼어놓고 인식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욕망과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 꼬발료프가 가지고 있는 계급 상승, 여성, 권력, 돈에 대한 욕망은 코를 잃어버리는 사건으로 위기에 빠지지만, 다시 회복한다. 이 기형적인 사건은 여기서 끝난다.
현실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이런 사건. 그런가? 술-뒤틀린 욕망의 발현과 환각, 민족중심주의, 상상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 실제보다 두려운 권력, 잊혀진 약자, 경찰서장과 의사-약자를 지켜주지 않는 사회권력, 가짜뉴스와 소문, 외모지상주의. 정말,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사건인가?
2) 외투 · 광인일기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바쉬마취낀’, ‘목끼, 솟씨’ 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유희와 풍자는 고골 소설의 거대한 축이다. 웃음은 우리를 이야기로 빠져들게 만들며 그 이후에 눈물로 대표하는 비극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미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병폐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비극적인 삶이 주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비극적인 결말 역시 울림을 준다. 비극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희극을 읽고 싶어 한다.
나아가 ‘외투’가 상징하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 역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늘 생존을 향해 투쟁한다. 삶은 계속 살아있기 위한 것이 가장 큰 가치가 되기도 한다. 외투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기 위한 물질적 생존의 매개체이다. 그러나 결국 아까끼를 죽인 것은 외투를 잃어버리고 난 이후 찾아온 허망함과 관리적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두려움, 즉 정신적 생존의 문제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물질적 생존에 관한 투쟁 역시 곳곳에서 벌어지지만, 정신적 생존에 관한 투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종교, 성, 자유 등을 포함한 모든 차별과 억압이 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유령이 되어 떠도는 아까끼의 모습은 이러한 생존을 보여주는 병적인 개체로 볼 수 있다. 흔히 쓰는 말로 ‘사회의 유령’이라는 말이 있다. 행인의 외투를 마구잡이로 빼앗아 들이는 이 유령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이미 불쌍한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 그러나 그 역시 외투를 빼앗김으로 죽은 사람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의 폭력이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위직 관리가 외투를 유령에게 잃는 모습은 쾌감을 주고, 가진 자들이 베풀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외투를 다시 살 수 있고 유령의 정체를 안 뒤에도 잠시 정신적 충격에 빠질 뿐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아온다. 남은 것은 누구의 슬픔인가.
‘광인 일기’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어내릴 수 있다. 이 병은 그 자신만의 것인가, 혹은 그 사회 전체가 지닌 병은 아닌가.
3) 초상화 · 네프스끼 거리
두 작품에서는 화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실물이야, 살아 있는 실물. 그런데 왜 묘하게도 불쾌한 느낌이 들까? 왜 벌써 모델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느껴질까? … 공감하지 않고 그저 냉담하게 대상을 선택했다면, 그 대상은 모든 것 안에 숨겨진 무엇인가 규명하기 어려운 사상의 빛에 의해 비춰지는 일이 없는 하나의 무서운 현실만을 나타내는 것일까?…” 151p
이것은 단순히 사실주의에 대한 시대적인 작가의 개인적 반론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단순히 그것에만 적용할 수 있는 일일까.
우리는 이 두 작품에서 파멸하는 젊은 화가와 그와 대비되어 나타나는 다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본다. 초상화를 그린 B의 아버지는 종교적인 회개를 통해 삶을 다시 회복한다. 삐로고프는 젊음의 생기와 단순하고 명확한 욕망을 드러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해프닝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회복한다. 그러나 다른 두 젊은 화가는 자신의 욕망에 취해 타락하고 죽음으로 파멸하고 만다. 두 화가는 서로 각기의 표면적 욕망을 가지며, 다른 선택을 하지만 종말은 같다. 돈과 여자, 그림과 사회에 대한 순수한 동경은 이 다른 욕망으로 매몰된다. 위의 세 소설들보다는 환상적인 요소가 적다. 더불어 사회보다는 내면적인 개인으로 참작한다. 사회적인 기이한 욕망의 파멸, 개인적인 정열과 같은 욕망으로 인한 순수한 예술적 욕망의 파멸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네프스끼 거리’가 지니는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남성적 사고는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맥락이다. 또한, 지금처럼 사진과 영화, 복제한 그림들이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과연 이 ‘초상화’ 속 차르뜨꼬프의 선택은 비난받을, 파멸해 마땅할 선택인가?
몇 가지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골의 이야기는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그의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
저 시대의 사회적 병폐들은 지금 해결되고 있는가? 오히려 다각화되어 더욱 타락한, 심지어 자기 변호적인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어느 아침, 그저 내 코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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