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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짧은글 (8) 시인을 위하여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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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짧은글 (8) 시인을 위하여 3

Algori 2021. 2. 6. 01:14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 천년의 상상

 

 

나는 시를 잘 모르나 좋아하는 시는 있다.

외국어로 쓰인 시는 온전히 말의 모든 쓰임을 이해하지 못한 듯해 우리말로 쓰인 시를 좋아한다.

시를 찾아 읽을 줄 몰라 다들 알고 좋다 하는 시만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 시들은 정말로, 정말로 좋았다. 

이 세 명의 시인들과 그들이 엮어낸 말들을 따로 말할 바가 없기에 그저 가장 좋아하는 시를 모아 적어둔다.

 

 마지막 시인은 김수영이다. 김수영이라는 시인에게 따라붙는 단어로는 자유도 있고 설움도 있다. 내게 김수영은 무엇보다 솔직함이다. 또 부끄러움이다. 세 시인의 시를 따라 적다보니 윤동주, 백석, 김수영을 관통한 부끄러움이 아른거린다. 잠시 대단한 발견인가 싶다가도 어찌 아니겠나 한다. 사람이 무언가에라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면 무언가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잊을테고 그리하면 시를 말할 리 없다. 아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리 없다. 나는 그렇다.

 

 **김수영의 시집이 아니라 김수영의 시를 처음 접한 책을 가져왔다. 아주 좋은 책이다. 나는 강신주 작가를 좋아한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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